📘 세무일기 1화 – “퇴근은 항상 미뤄진다”
나는 세무사도 공인회계사도 아니다.
그저 세무사사무실에서 경력이 쌓여 과장이 된 사람일 뿐이다.
처음엔 세금만 다루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오래 버티며 깨달은 건, 이 일은 결국 ‘사람’을 다루는 일이라는 것이다.
원천세, 부가세, 종합소득세, 법인세.
세금 종류가 뭐든 결과는 같다.
자료는 항상 늦고, 급한 건 우리가 감당한다.
진짜 마감일은 고객이 아니라 우리 쪽의 문제니까.
그날도 평소처럼 5시 55분.
전표 프로그램을 닫으려던 찰나, 익숙한 ‘까톡’이 울린다.
소름 돋는 타이밍. 역시 거래처였다.
며칠 전부터 수차례 요청한 원천세 자료가 이제야 도착했다.
“오늘까지 신고 가능하죠? ^^”
퇴근 직전에 업무가 몰리는 현실을 상징하는 감성 일러스트입니다. 세무사무실의 바쁜 일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독촉할 땐 그렇게 조르더니, 자료는 늘 퇴근 5분 전에야 보낸다.
게다가 자료 상태는 항상 엉망이다.
거래명세표 없음, 입금 내역 누락, 손글씨 메모 몇 장. 정리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우리 회사엔 유독 그런 거래처가 몇 있다.
원천세 마감이 다가오면 꼭 5시쯤, 퇴근 직전에 파일을 보내오는 곳.
그들은 “오늘까지 꼭 부탁드려요~” 한 마디를 남기고는 사라진다.
그 덕분에 우리는 늘 시간에 쫓기며, 미완성 자료를 붙잡고 정리를 반복한다.
부가세 때 더 심한 거래처도 있다.
마지막 날에야 겨우 자료를 보내고, 그것도 누락된 파일이나 엉망인 스캔본이다.
신고는 간신히 마치지만, 결국 수정신고까지 이어진다.
“이번엔 정말 마지막이에요!”라는 말이 반복될 뿐, 개선은 없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화도 안 난다. 그냥 “이번에도 왔구나” 싶을 뿐이다.
실장님은 퇴근하며 농담처럼 말한다.
“과장님 또 야근이에요? 너무 열심히 하시는 거 아녜요?”
나는 웃으며 말 대신 중얼거린다.
“어차피 자료는 늦게 오고… 야근은 늘 내 몫이지 뭐.”
사실 이런 일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점심시간엔 “지금 식사 중이라서요”,
오후엔 “외근 중이라서요”,
퇴근 무렵엔 “지금 막 보냈어요.”
그리고 진짜 파일은 6시 넘어서, 우리가 퇴근하려는 그 순간에야 도착한다.
이쯤 되면 ‘자료는 항상 늦고, 급한 건 무조건 우리가 맞는다’는 게 공식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일은 해야 한다. 미뤄봐야 결국 내 일이니까.
속은 타지만, 나는 이미 전표를 치고 있다.
이쯤 되면 체념이 익숙함처럼 굳어진다.
요즘은 거래처 수가 늘면서, 이런 일이 더 자주 생긴다.
한 달 내내 미리 안내하고 독촉해도, 자료는 늘 막판에 몰린다.
자료를 받아도 그게 끝이 아니다. 엑셀 양식이 맞지 않아서 다시 요청하고,
"PDF는 안 되시죠?"라는 말과 함께 사진 찍은 종이 자료가 오기도 한다.
우리는 그걸 다시 수기로 정리해서 전표를 입력하고,
신고서 작성 전에 세액까지 다시 검토해야 한다.
하나라도 오류가 있으면 과소 신고로 이어지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업무가 반복돼도 매번 새롭다. 새로운 스트레스, 새로운 사고가 늘 생긴다.
그런데도 이 일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누군가는 이 복잡한 일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면 또 누군가가 야근을 하겠지.
이 일은 늘 누군가의 희생 위에 굴러간다.
그럴 때면 속으로 생각한다.
이 업무는 숫자를 맞추는 게 아니라, 마음을 조율하는 일이라고.
내가 화를 내면 업무는 더 꼬이고, 웃으며 넘기자니 스트레스는 내 몫이다.
‘직장인 멘탈’은 장비도 아니고, 소비해도 재충전이 안 된다.
가끔은 의심도 든다. 정말 이게 정상인 건가?
왜 항상 마지막 날, 퇴근 직전, 점심시간에만 자료를 보내는 걸까.
우리는 마법사가 아니다. 정리와 확인에도 시간이 걸린다.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데, 왜 매번 그 타이밍일까.
혹시 일부러 그런 건 아닐까 싶다가도, 그냥 내 일이니까 넘긴다.
전자신고는 서버가 느리고, 자료는 미완성.
계좌 누락, 세액 오류, 파일 형식 문제까지.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맞추다 보면 금세 밤 8시가 넘는다.
사무실엔 나 혼자, 창밖은 조용하고, 머릿속만 복잡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까톡’이 울린다.
하나 끝나면 또 하나.
세무사사무실에서 마감은,
자료가 제때 오는 날이 오기 전까진 오지 않는다.
이 글이 누군가에겐 공감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세무사사무실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은,
결국 우리 모두가 겪는 ‘일하는 사람의 현실’일지도 모르니까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하루에, 작은 용기 하나가 더해지길 바랍니다.
당신의 하루가 끝나는 그 순간,
누군가의 일이 이제 막 시작된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이 글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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